마노아: 기대를 넘어선

Ma No Ah
Contributor
제가 처음 매직 카드를 잡아본 날은, M14가 출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명의 친구와 함께 서울 바로 북서쪽에 있는 동네 게임샵에서 열린 초보자 설명회에 갔을 때였습니다.

당시에 설명회는 그저 하루 오후를 즐겁게 보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친구들에게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들 중 아직도 활동하는 것은 저 뿐입니다. 한국에서 매직 플레이어들이 처한 환경을 생각해보았을 때 그리 이상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한국은 SK텔레콤 T1, 페이커와 이영호 선수의 고향이지만, 매직은 이스포츠가 그랬던 것만큼 한국 문화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한국인들의 게임에 대한 열정을 비추어 봤을 때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도 매직을 포함한 모든 카드게임은 많은 어른들 사이에서 매도되고 있습니다. 매직이 시간낭비라는 정도가 아니라, 도박의 일종이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비난받을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런 편견과 함께 카드팩과 싱글들의 압박적인 가격을 더하면 플레이어층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회를 매주 나갈 수 있는 이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한국 땅에서 그랑프리가 열린 적은 한 번도 없고, PTQ는 잘해야 시즌 당 두어번 열리면 감지덕지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환경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제 친구들은 다른 취미로 넘어갔지만, 매직에 대한 무언가가 제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었습니다. 동네 대회만을 나가던 초창기 시절에는 제 목표가 무엇인지 잘 몰랐었지만, 2014년 봄 드디어 제 첫 그랑프리에 출전하기 위해 일본 나고야에 갔을 무렵에는 제 마음 속에 한 가지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프로투어에 참가자격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대단히 야심찼던 제 목표에는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런 규모의 경쟁적 대회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그때까지 제가 경험한 어느 것과도 맞먹는 희열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때, 매직에 대한 제 열정이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는 것이 명확했습니다.

제 두 번째 그랑프리에 참가하기 위해 2014년도에는 상하이로 떠났고, 2015년 초반에는 시즈오카와 상하이 그랑프리에 참가하였습니다. 매번 기대에 부푼 채 집을 나섰지만, 결국 프로투어에 참가자격을 얻지 못한 채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실망했지만, 돌이켜 보면 아직 때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직 제 플레이는 성장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도, 제 운명을 바꿔 줄 어떤 일이 곧 일어났습니다.

남성욱 선수는 프로 투어 Journey into Nyx를 2위로 마무리했을 때부터 늘 제게 우상 같은 존재였기에, 제 친구가 우리를 소개시켜 주었을 때는 꿈이 이루어진 것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그의 조언을 마치 스폰지처럼 받아들였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를 멘토이자 친구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2015년 봄 군복무를 시작했지만, 하루 14시간씩 일하면서도 군복무 2년에 걸쳐 수천번의 드래프트를 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여러 모로, 눈을 비비며 늦은 밤까지 드래프트를 하던 나날들이 지금 제 선수로서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실력이 늘었을 뿐 아니라, 제가 어떤 플레이어인지, 그리고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감을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Finkel, Budde 또는 Masashi Oiso와 같은 천재는 아니었지만, 노력해도 제가 세계 최고의 반열에 들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해가 지날 수록 발전해 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프로투어에 초청받는 제 유일무이한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2019년이 되기 채 몇 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시즈오카 그랑프리에서 1승 차이로 Mythic Championship 1에 참가자격을 얻지 못했을 때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제 실망은 곧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채 2주도 지나지 않아 매직 온라인 PTQ에서 우승을 한 것입니다.

대회를 위해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경기를 시작하기 고작 몇 분 전에 사이드보드를 만들어냈지만, 이 순간 몇 년간의 지치지 않은 노력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세계 최상위권 선수들 일곱 명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Mythic Championship 1의 첫번째 드래프트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진 카드 팩을 보면서 저는 인생 어느 때보다도 긴장했습니다. 하지만, 드래프트를 할 순간이 되자 저는 카드를 집어들었고 모든 긴장감은 제게서 흘러내리듯 사라졌습니다. 저는 최선의 매직을 플레이 하는 데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에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 덱은 꽤 좋게 나왔지만, 플레이가 부족해서 저는 1승밖에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책에 빠졌을 테지만, 저는 말릴 수 없이 긍정적인 제 태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스탠다드 덱이 경기장에서 가장 좋다는 것을, 그리고 제가 경기장에 있는 누구만큼이나 잘 플레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되돌이켰습니다. 침착함을 유지해서 5라운드 중 4라운드를 이겼고, 거기서부터 기세를 놓지 않았습니다.

Day 2가 끝난 시점에서 저는 스탠다드를 9승 1패로 마무리하여, Mythic Championship 2에 참가자격을 얻기 위해 필요한 33포인트를 모았습니다. 프로투어에서 경기하는 게 어떤 느낌일지 상상속에 그려본 것만도 몇년이었지만, 말도 안되는 꿈 속에서도 제 첫 프로투어가 이렇게 잘 풀릴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첫 프로투어에서 이토록 높은 성적을 거둔 것은 대단한 업적이었지만, 저는 자만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Mythic Championship 2를 바로 앞두고 있던 그 때, 저는 제 데뷔 성적과 동등하거나 나은 성적을 충분히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보장된 것은 없었고, 전에 올랐던 고지에 다시 돌아갈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열심히 노력해야 했습니다.

Mythic Championship 2의 첫 6라운드 까지만 해도 제 노력이 헛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Mythic Championship 1에서는 리미티드 부분에서 2승 4패의 기록이 8강에 대한 희망을 깨 버렸기에, Mythic Championship 2에서 첫 라운드의 패배를 떨쳐내고 연승으로 드래프트를 마무리했을 때는 어깨에서 짐을 내린 듯 후련하였습니다.

기세를 몰아 모던에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덱인 Jund로 3, 4, 5연승을 거두었습니다. 단숨에 저는 5승 1패가 되어, 두번째 참가한 Mythic Championship에서 두 번째 쾌거를 이루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저는 7라운드에서 제 전략을 성공시키지 못했습니다. 8라운드에서도 마찬가지로 머뭇거렸습니다. 정신도 차리기 전에, 유망했던 대회가 나락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저는 상황을 역전시키려고 시도했지만, 마지막 10라운드 중 8라운드를 지고 말았습니다. 희망에 부푼 채 런던으로 떠났건만, Mythic Championship 3 참가자격을 얻지 못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세 번 연속 Mythic Championship에 출전하기 위한 기회가 제한되어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저는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Mythic Championship 1 이후 자만하지 않았듯이, 두 번째 대회에서의 아쉬운 성적에도 불구하고 저는 평정심을 유지했습니다. 저는 명백히 실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좋은 성적이 더 찾아올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교토 그랑프리 금요일 PTQ를 꿰차 첫 시도에 Mythic Championship 4 참가자격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 결과로 모던 Mythic Championship에서 Jund를 플레이해볼 또 한번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기회를 한껏 살려 12승 4패로 마무리했습니다. 이 덱을 사용한 다른 어떤 선수보다도 높은 승수를 기록했는데, 이것은 Mythic Championship 1에서 Sultai로도 제가 한 번 이루었던 업적입니다.

대회를 11위로 마무리하는 것도 좋았지만, 대회를 더욱 보람차게 만든 것은, 제가 다른 한국 선수인 배대경 선수를 도움으로써 남성욱 선수가 제게 해 주었던 역할을 본받을 수 있었던 점입니다.

플레이어끼리 서로 돕는 모습이 매직을 특별하게 만드는 점이라고 오랫동안 느껴왔습니다. 제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절대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제 발전에 다른 선수들이 얼마나 필수적이었는지 알고 있기에, 같은 역할을 하는 것에 영광을 느낍니다.

세 번의 프로투어에 참가할 때만 해도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듯 했지만, Mythic Championship 6에 참가하면서는 그만큼 확신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나고야 그랑프리에서는 Sultai Food를 플레이했지만, 미러 매치에서의 승리가 선공에 좌우되었기 때문에 제 상대들을 이길 기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고야에서 9승 6패의 성적을 보잘것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말에는 대단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Masukado Kenta라는 일본 선수가 Bolas’s Citadel이 들어간 Golgari Adventure의 변종을 플레이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덱과 그의 플레이가 너무나도 인상깊어서 대회가 끝나자마자 그에게 말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제가 유비가 되어, 현세에 태어난 제갈량에게서 전략을 받기 위해 삼고초려하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제 한 해가 아주 다르게 마무리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덱을 손에 넣은 저는, 4개월 전 마지막 Mythic Championship에서의 성과를 이어나갈 각오로 미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첫 드래프트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으며 익숙한 긴장감이 저를 감싸왔습니다. 갑자기, 한 번의 안내방송으로 긴장감은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대회에 참가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지만, 안내방송에 따르면 제가 2019년 내내 거둔 상위권 성적으로 제가 2020년 첫 Player’s Tour에 참가자격을 얻었다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걱정 없이 대회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초반의 몇 개의 무승부와 또 한번의 안 좋은 드래프트 결과를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고 마지막 4라운드 중 셋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컨스트럭티드에서 7-2-1이 되는 바람에, 마지막에는 아주 특이한 10-3-3이라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든 33점은 33점이었고, 또한번 자랑스러워 할 만한 성적을 내었습니다.

사실, 제가 올해 열린 모든 테이블탑 Mythic Championship에 참가하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Mythic Championship 1, 4와 6에서 49위, 11위, 38위를 한 것은 더더욱 믿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기대 이상이었다는 말 정도로는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Mythic Championship 7에 참가하지는 못하였지만, 그 주말이 특별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몇몇 친구들과 대회를 보고, 드래프트를 하고, 유튜브를 보고, 매직을 즐겼습니다. 주말도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가장 즐거운 순간은 월요일 아침 일찍 찾아왔습니다.

몇 주 전부터 제가 Magic Rivals에 거의 참가 확정되었다고 사람들이 제게 말해왔는데, 대회가 마무리되면서 그것이 드디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소식을 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완전히 실감나지 않습니다. 제가 Magic Rivals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제 일생 어느 때보다도 행복합니다.

지난 5년 동안 대학교 공부를 하고, 군복무를 하고, 몇몇 직장에서 근무를 하며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제, Rivals 선수로서 받게 될 연봉 덕분에 저는 드디어 매직을 전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제가 이룬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면서, 제가 사랑하는 취미를 더 큰 것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큰 기회이기도 합니다.

올해 일어난 모든 일을 생각해 봤을 때, 2020년을 위한 제 목표는 끝이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는 기대는 그만두려 합니다. Player’s Tour에서 우승을 하거나, MPL이나 Worlds에 참가자격을 얻는다면 너무나도 기쁘겠지만, 아직 보장된 것은 없고 2020년에 어떤 일이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제가 매직을 하는 제 꿈을 이어나갈 기회를 가졌다는 것 뿐입니다. 그것이 저를 가장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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