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를 완수하다

대한민국에서 모든 남성은 필수적으로 2년간 병역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27세가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군복무를 연기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가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대부분의 남성은 18세나 19세에 군대에 가지만,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연기할 수 있다. 내가 군입대했을 시에 나는 프로게이머로서 7년간 활동해온 시점이었는데, 이미 평균 스타크래프트 커리어보다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프로게이머에게 군입대란 사실상 은퇴나 다름 없다. 당시 나는 일주일만 쉬어도 손이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2년간 게임을 안 한다는 게 상상이 가지도 않았다. 특히나 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내 정체성의 일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군복무는 여러 의미에서 나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켰다. 몸이 건강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진급하면서 지휘관이 될 수 있는 기회도 생겼고, 리더십에 대한 값진 배움도 얻을 수 있었다. 프로게이머로서 익숙해져 있었던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군복무 시절, 나는 여전히 스타크래프트 프로 대회를 보곤 했다. 신인 선수들과 여전히 견줘볼 수 있을까 혼자서 고민하기도 했다. 군입대를 하기 전부터도 사람들은 내 나이 때문에 내 실력을 의심하고 있었다. 27살은 프로게이머로 치면 늙은이라고 하더라.

돌아보면서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음을 깨달았지만, 절대로 쉽지는 않았다. 커리어 신인 시절 독일로 갔었는데 솔직히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가족과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 있었다.

적어도 같이 한국에서 온 팀원들이 몇몇 있어서 적어도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있었다.

독일에 있었을 당시, 거의 개인 시간이 없는 느낌이었다. 다른 게이머들과 함께 숙소에서 지내고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보내고 있었다. 만약 집 밖으로 나간다면 무조건 팀원들과 함께, 그것도 한국어를 잘 하는 팀원들과 함께 하는 외출이었고, 혼자서 있을 수 있는 개인 시간이 별로 없었다. 혼자 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리웠다.

감사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스타크래프트는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고 나는 복된 커리어를 가질 수 있었다.

올해 “게임체인저: 블리즈컨의 꿈”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무척 기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카메라는 연예인만 따라다니기 때문에 내가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2011년 블리즈컨에서 블리자드컵을 들어올린 순간은 항상 기억에 남을 것이다. 우승한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2만5천여명의 팬들이 “MMA! MMA!”를 외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았다.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고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프로게이머가 되길 잘했다고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궁극적으로는 항상 스타크래프트로 돌아오고 싶다는 걸 사실 줄곧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복무가 끝난 후 프로계 복귀를 선언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었다. 선수로서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더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다.

블리즈컨 무대에서 다시 한번 우승하는 꿈이 있다 – 2014 WCS 글로벌 결승전에서 4-1로 이승현(Life)선수에게 지는 것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악몽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첫 복귀전은 굉장히 특별한 순간이었다. 여러가지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무척 긴장해 있었고 이기는 것보다 실력을 키워나가는 데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졌을 때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게임과 동 떨어져 있었던 만큼 이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내 유일한 목표는 실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예전 실력이 아님을 인정할 수 있고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것도 알고 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한번에 한 가지 목표에만 초점을 두고 노력해야만 최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하는 건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것밖에 안 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완전히 전념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은퇴 얘기를 종종 꺼내는데, 나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 나는 경쟁을 하고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데 아직 오지 않은 시기에 대해 걱정해봤자 시간 낭비 아닌가?

어차피 한동안 은퇴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육체적으로 불가능 할때까지 게임할 생각이다. 손가락이 떨어져서 은퇴할 수 밖에 없을 때까지 게임할 거다! 은퇴할 때가 오면 그때 또 적당한 기회가 나타나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크게 걱정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밍이 내게 준 모든 것에 너무도 감사한다. 감사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최선을 다 해 노력하고, 은퇴해도 후회가 없도록 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가 없는 인생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 정체성이자 내 삶의 이유다.

Start the discussion

to comment